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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하면 대원릉, 문무대왕릉, 황리단길, 첨성대, 최진립 가문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국내여행 2021. 7. 17. 02:46

    대원릉은 신라의 독특한 무덤군으로 왕,왕비,귀족들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신라 문화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천마총은 출자 금관을 비롯한 목걸이와 허리띠 등의 장신구, 마구류 등 유물 11,500여 점이 출토된 고분이다. 발굴된 유물 중에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가 특히 유명하여 천마총이라 이름이 붙였다. 미추왕릉은 유일하게 왕릉의 주인이 밝혔졌는데 신라의 13대 왕인 미추왕이 그 주인공으로 그는 농업을 장려하고 외적으로부터 여러 번 나라를 지킨 성군이었다. 미추왕이 죽은 뒤 이서국이 신라로 쳐들어왔을 때 대나무 가지를 꽂은 병사들이 이서국 병사들을 물리쳤는데 나중에 미추왕의 무덤에 대나무 가지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선왕이 병사를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미추왕릉을 죽현릉이라고도 불린다

     

    문무왕은 죽은 뒤에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무덤을 바다에 만들 것을 부탁했다. 그 아들인 신문왕에게 자신이 죽은 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만파식적을 불어 용이 된 자신을 불러내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문왕은 동해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또한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아버지가 감은사에서 쉴 수 있도록 절의 아래로 물길을 끌어왔다고 한다. 절은 이루던 건물은 지금 모두 사라지고 3층 석탑 2기만이 남아 있다

     

    황리단길은 황남동 인근에 조성된 거리로 황남동과 경리단길을 합성해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 hot place를 일컫는 아름답게, 눈길을 끄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은 곳이다. 한옥으로 지어진 게스트하우스와 개성 넘치는 식당, 카페 들이 골목마다 즐비하다. 그리고 그 거리를 신라의 복장을 빌려 입은 젊은이들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Gentrification 현상이 경주의 황남동에도 일어난 것이다. 황리단길 일대의 가게 임대료가 1년 사이 10배이상 올랐다는 것이다. 토지와 빈곤의 관계를 고민한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인류의 진보로 이룩한 부가 대부분 토지를 소유한 사람에게로 흘러감으로써 많은 이가 기술과 경제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빈곤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대에 만들어진 곳으로 추정되고 신라인들의 천문학적 지식을 엿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천문을 읽고 점을 치는 사람이 나오는데 아마도 그가 점괘를 발표한 곳이 첨성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 신라인들은 계절과 날씨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의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단을 나누면 창문의 3단을 제외한 위아래 단수가 각각 12단이고 합하면 24단인데 1년이 1224절기임을 알고 반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 높지 않은 크기, 굴뚝같기도 하고 탑 같기도 한 독특한 외양은 대릉원 인근의 탁 트인 공지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천년고도 경주에는 조선시대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최진립 장군의 생가이다. 최진립 장군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참전한 의인이다 임진왜란 1592년에 25살의 나이로 마을의 장정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서 공훈을 세우고 병자호란인 163669살에 참전해서 작렬이 전사했다 이때 그를 따라 전쟁터에 나섰던 두 노비 옥동과 기별도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 최씨 가문의 후손들은 최진립 장군과 옥동과 기별의 제사를 함께 지낸다고 한다. 인간존중의 정신은 최진립 장군의 손자 최국선에게도 이어졌다. 최국선은 그의 아버지 최동량과 함께 선진적인 농업 방식으로 상당한 부를 이루어 만석꾼으로 불렸는데 그러한 부는 무려 300년간 유지되었다고 한다. 비결은 6가지로 요약하는데 과거를 보데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로 항상 주위를 살피고 인간존중의 사상으로 백성과 함께하고 겸손한 삶을 산 것이다. 최부잣집이 마지막 만석꾼 최준은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곳에 모아지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라는 말을 남겼다. 의미한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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