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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홍차가 산업혁명시대 노동력 증대를 위해 대중화가 되었다고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2. 1. 22. 03:15
홍차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영국을 떠오른다. 영국에서는 호텔에 가면 오후 4시에서 5시사이에 애프터눈티를 시켜 홍차와 우유, 예쁜 과자들을 먹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영국은 포트넘 앤 메이슨과 요크셔 티와 같은 수많은 홍차회사가 있을 정도로 차 문화가 매우 발달한 나라이다. 국민 대부분이 평균 일곱잔의 홍차를 마신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 가장 먼저 차를 받아들인 나라는 네덜란드였다. 그것도 일본을 통해서이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일본과 주로 무역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중국 청나라의 광저우로부터 차를 수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에 차 문화가 전파되었다. 그래서 당시 영국에서는 중국의 광동어 차를 그대로 받아들여 티를 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 유럽으로 전해진 차는 색이 투명하거나 연한 녹색에 가까웠다. 차가 붉은 색이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어느 날 더운 인도양을 통해 운반되던 찻잎이 햇볕 때문에 발효가 되었다. 상인들은 찻잎이 너무 비싸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찻잎을 다시 말려 붉은 홍차로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외로 사람들이 반응이 좋아서 18세기 말부터는 홍차가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당시 차는 가격이 비싸 상류층만의 음료로 이런 차가 대중화된 계기는 산업혁명이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영국은 그전부터 광대한 시장과 풍부한 자본, 자원, 노동력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증기 기관의 기계화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다른 나라보다 산업화가 빨리 진행되었다. 하지만 많은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일자리가 귀해지고 농촌인구가 대량으로 도시에 유입되면서 자연스레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악조건에 시달렸다. 일에 지친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면 하루의 피로를 술로 풀었고 점차 알코올 중독자로 변해갔다. 공장주와 자본가들은 당연히 이를 싫어했고 그래서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알코올을 대체하는 음료로서 홍차를 적극 장려했다. 여기에 정부가 홍차세를 폐지하여 가격을 낮추자 홍차는 급속히 대중화되었다.
한편 미국 독립혁명의 결정적인 계기도 1773년 보스턴 차사건에서 기인한다. 시민들이 동인도 회사 선박을 습격하여 싣고 있던 모든 차를 바다에 빠뜨려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을 빌미로 보스턴항 법안을 만들어 군대를 주둔시키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등 식민지 탄압을 강화했고 이에 시민들은 굴하지 않고 혁명정부를 출범시켜 미국 독립을 이루었다. 그리고 유명한 홍차 중 하나인 실론 티가 있는데 이것은 포르투갈,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48년에 독립한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사자의 섬으로 알려졌다. 실론은 1972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면서 헌법을 통해 스리랑카로 국명을 바꾸었다. 영국인들이 스리랑카에 대규모 차 밭을 가꾸면서 지금의 유명한 실론 티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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