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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명종때 의적 ‘임꺽정’과 숙종때 ‘장길산’는 어떤 활약을 했을까 ?
    아들을 위한 인문학/한국사 2021. 5. 31. 05:09

    조선시대에 3대 의적으로 꼽히는 사람이 연산군때 홍길동, 명종때 임꺽정, 숙종때 장길산이 있다. 의적이라면 탐관오리의 재산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도적을 말하는데 임꺽정이 의적이라는 조선왕조 실록에는 아직 기록이 없다. 명종때는 양반들의 횡포가 심하고 혼란한 시기에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백정들은 도축, 망나니, 공예품 제작을 했다. 임꺽정은 황해도에서 갈대로 공예품을 만드는 백정이었는데 경국대전에 의하면 개간한 땅의 경작권을 인정하는 개간 장려책이 있는데 왕실재산 관리인 내수사가 이 일대 갈대밭에 주인행세를 하며 갈대를 팔았다고 한다. 이 당시 황해도는 갯벌이라 농사가 부족했지만 16세기에는 개간사업으로 곡창지대를 형성하여 땅값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도적을 잡는 포도관 이익근이 군사를 거느리고 새벽에 적소에 들어갔는데 일곱 대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이에 다섯 고을이 모여 임꺽정 체포를 위해 연합군을 500명 결성했는데 임꺽정 도적떼에 패배하기도 했다. 임꺽정이 비롯 의적은 아니지만 집권층의 착취가 심하여 황해도 백성들은 집을 버리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반정부 세력으로 구성하였고 임꺽정 도적떼의 집단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중은 궁지로 몰리고 도적떼로 변질되어 조선의 탐관오리가 판치는 사회에 생존권적인 저항을 했다. 장길산은 조선 효종때 계집종 몸에서 태아나서 광대 장충의 구원으로 재인 마을에서 성장하고 그는 같은 마을의 역사, 상단의 행수, 화적인과 어울린다. 창기였다가 버려진 묘옥과 정분을 맺는데 길산은 해주 간상배 신복동을 징벌하려다가 붙잡혀 사형수가 되지만 박대근의 도움으로 탈옥한다. 그는 양부모의 뜻을 어길 수 없어 누이동생인 봉순과 결혼하지만 뜻한 바가 있어 금강산에 들어가 운부대사의 가르침을 받아 차츰 백성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한다. 길산은 숙종때 대기근이 발생하자 관아와 부호를 털어 기근 구출에 힘쓰고, 그의 이름이 백성의 입에 오르내린다. 조정에서는 토포를 명하나 길산의 활약은 더욱 빛난다. 입국의 뜻을 가진 사람이 구월산에 모이는데 길산의 활빈도, 운부대사 승병, 해서의 무계, 근기지방의 미륵도 등이 결속한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왕조가 망한다는 괴서가 나돌고 미륵이 용화세계를 이룩한다는 믿음이 퍼진다. 길산은 언진산에 터를 잡고 관군과 맞서고 고달근이 길산 일당을 밀고하나 급습을 피하여 달아난다. 해서와 관북일대 장길산을 자처하는 무리들이 출몰해 조정을 괴롭히지만 길산을 본 사람은 없다.이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들 의적들은 조선 봉건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고 밑으로부터 생존권 투쟁을 하였는데 이는 영국에서 일어난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생긴 도시 근로자의 노동착취에 대해 생존권 투쟁으로 기계파괴운동과도 비슷한 저항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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