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명시들-53) 거울 / 돌팔매 / 달 포도 잎사귀

ybea12 2025. 6. 5. 02:30

< 거울 - 이상 >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개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 모르지만 외로운 사업에 골몰할께요

 

거울 속의 나는 참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 돌팔매 - 신석초 >

바다에 끝없는

물결 위으로

내, 돌팔매질을 하다

허무에 쏘는 화살 셈치고서

 

돌알은 잠깐

물연기를 일고

금빛으로 빛나다

그만 자취도 없이 사라지다

 

오오 바다여 !

내 화살을

어디다 감추어 버렸나

 

바다에

끝없는 물결은

그냥 까마득할 뿐

 

< 달 포도 잎사귀 - 장만영 >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