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명시들-41) 장미 / 이발사의 봄 / 체념

ybea12 2025. 3. 13. 03:00

< 장미 - 송욱 >

장미밭이다

붉은 꽃잎 바로 옆에

푸른 잎이 우거져

가시도 햇살 받고 

서슬이 푸르렀다

 

벌거숭이 그대로

춤을 추리라

눈물에 씻기운

발을 뻗고서

붉은 해가 지도록

춤을 추어라

 

장미밭이다

피 방울 지면

꽃잎이 먹고

 

기진하며는

가시마다 살이 묻은

꽃이 피리라

 

< 이발사의 봄 - 장서언 >

봄의 요정들이

단발하러 옵니다

 

자주공단 옷을 입은 고양이는 졸고 있는데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프리즘의 채색은

면사인 양 덮어 줍니다

 

늙은 난로는 가맣게 묵은 담뱃불을 빨며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어항 속에 금붕어는

용궁으로 고향으로

꿈을 따르고

 

젊은 이발사는 벌판에 서서

구름 같은 풀을 가위질할 때

 

소리 없는 너의 노래 끊이지 마라

벽화 속에 졸고 있는 종달이여

 

< 체념 - 김달진 >

봄 안개 자욱히 내린

밤거리 가등은 서러워 서러워

깊은 설움을 눈물처럼 머금었다

 

마음을 앓는 너의 아스라한 눈동자는

빛나는 웃음보다 아름다와라

 

몰려가고 오는 사람 구름처럼 흐르고

청춘도 노래도 바람처럼 흐르고

 

오로지 먼 하늘가로 귀 기울이는 응시

혼자 정열의 등불을 다를 뿐

 

내 너 그림자 앞에 서노니 먼 사람아

우리는 진정 비수에 사는 운명

다채로운 행복을 삼가하오

 

견디기보다 큰 괴로움이면

멀리 깊이 산 구름 속에 들어가

몰래 피었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싸늘한 입술을 맞추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