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명시들-30) 향미사 / 물레 / 모란이 피기까지는

ybea12 2024. 12. 19. 03:10

< 향미사 - 이원섭 >

향미사야

너는 방울을 흔들어라

원을 그어 내 바퀴 삥삥 돌면서

요령처럼 나는 방울을 흔들어라

 

나는 추겠다, 나의 춤을 !

사실 나는 화랑의 후예란다

장미 가지 대신 넥타이라도 풀어서 손에 늘이고

내가 추는 나의 춤을 나는 보리라

 

달밤이다

끝없는 은모랫벌이다

풀 한 포기 살지 않는 이 사하라에서

누구를 우리는 기다릴 거냐

 

향미사야

너는 어서 방울을 흔들어라

달밤이다

끝없는 은모랫벌이다

 

< 물레 - 김억 >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

사람의 한 생은 시름에 돈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외마디 겹마리 실마리 풀려도

꿈 같은 세상은 가두새 얽힌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사르릉

언제는 실마리 잠자던 도련님

인제는 못 풀어 날 잡고 운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원수의 도련님 실마리 풀어라

못 풀 걸 왜 감고 날다려 풀리나

 

<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쁨의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