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명시-19) 세월이 가면 / 청포도 / 오륙도

ybea12 2024. 9. 19. 03:05

< 세월이 가면 - 박인환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떄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수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청포도 - 이육사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오륙도 - 이은상 >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 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안개가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오늘은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헤던 손 내리고서 오륙도라 이르던가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