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탄산칼륨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신소재 2026. 6. 2. 01:13

     

    프레스코화

    탄산칼슘은 다채로운 모습을 나타내며 석회암의 형태로 대량 산출된다. 탄산칼슘 덩어리는 교실에서 쓰는 분필이다. 연마력이 있는 탄산칼슘 가루는 치약이나 지우개에 들어가고 도기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또 종이를 뜰 때 종이가 하얗게 비치는 현상을 막아주기 때문에 제지업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탄산칼슘은 식품에도 들어가는데 탄력이 있는 라면 면발을 만들 때 사용하는 함수, 빵을 빨리 발효하게 해주는 이스트, 햄 소시지 과자류 등을 비롯해 영양 강화제나 의약품인 알약의 기본 재료가 되는 등 다방면에 걸쳐서 활약한다. 겉모습은 완전히 다르지만 대리석의 주성분 또한 탄산칼슘이다. 대리석은 석회암이 마그마 열에 녹았다가 다시 결정을 이룬 것으로 조각이나 건축에 중요한 재료다. 또 석회 가루를 물과 안료로 착색한 다음 완전히 마르기 전 회반죽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은 프레스코화라고 한다 대표적 프레스코화는 로마 바티칸 궁정 내 시스티나 예배당에 걸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꼽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 또한 석회암 위에 그려진 일종의 프레스코화다. 벽화가 1.5만년이나 되었는데 이것은 석회암 덕분이다. 예술 분야에서 탄산칼슘의 역할은 크다.

    라임라이트

    지구에 탄산칼슘이 풍부한 이유는 탄산칼슘의 원료는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쉽게 녹으므로 바다에 흡수되어 탄산이 되고 더 나아가 바닷물 속에 풍부한 칼슘이온과 만나 불용성의 탄산칼슘이 되어 가라앉는다.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가스로 태양열을 대기 안에 가두어 지구 온도를 높인다. 지구가 갓 탄생할 당시에는 무려 60기압에 달하는 짙은 이산화탄소가 지표를 덮고 있어서,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바닷물이 말라서 지구는 고온이었다. 그러나 해저 화산 등에서 분출된 칼슘과 바닷물에 녹은 이산화탄소가 결합해 해저에 쌓이는 반응이 일어남으로써 대기 속 이산화탄소가 감소했고 기온도 점차 내려갔다. 금성은 지름과 질량이 지구와 거의 비슷해 지국의 쌍둥이 행성이라 불린다. 한때는 금성에도 바다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금성은 지구보다 태양에 조금 더 가까운 탓에 열을 많이 받아서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도 전에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그 결과 금성의 대기에는 90기압에 달하는 이산화탄소가 남았으며 강렬한 온실효과로 기온이 무려 400도 이상이나 된다. 지구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가두어둔 탄산칼슘 덕분이다. 석회가 중요한 재료인 이유는 나무재와 함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알칼리성 물질이다. 게다가 석회석이나 조개껍질을 빻는 후 열을 가하면 이산화탄소가 날아가서 생석회(산화칼슘)가 된다. 생석회를 조명에 사용하기도 했다. 생석회를 수소와 산소 혼합 가스로 만든 고온의 불꽃으로 태우면 강렬한 백색빛을 발하는데 이 빛은 석회의 빛이라는 뜻에서 라임라이트라 불리며 극장의 무대 조명 등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백열전구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라임라이트는 주목을 받았다. 한편 인류 종말 후 문명 재건에 필요한 것이 탄산칼슘이라고 우주생물학자는 말한다. 이는 식량생산에 필요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산성도가 높으면 중요한 영양분인 인산을 흡수하기 어려운 탓에 식물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석회를 뿌림으로써 산성을 중화한다. 게다가 석회에는 작물을 병충해로부터 보호해주는 효능이 있으므로 농업과 원예업에도 석회를 빠뜨릴 수 없다.

    로마 도로

    탄산칼슘의 용도는 시멘트의 원료이다. 석회암 75%에 점토, 규석, 산화철 등을 25% 비율로 섞어 제분소에서 빻은 후 이 가루를 1450도쯤 되는 고온에서 구우면 탄산칼슘에서 이산화탄소가 빠져 산화칼슘(생석회)가 된다. 이 덩어리를 다시 한번 빻은 것이 바로 시멘트다. 그리고 시멘트를 물로 반죽한 후에 내버려두면 칼슘과 규산이온 등이 결합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단단하게 굳는데, 여기에 미리 모래나 자갈을 섞어 강도를 높인 것이 콘크리트다. 시멘트는 자유롭게 형태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굳으면 돌처럼 단단해지므로 건축 재료로 중요하다. 이 재료는 9천년 전의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는 시멘트를 피라미드 축조에 사용했고 중국에서도 약 5천년 전부터 사용했다. 시멘트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나라는 로마제국이다. 로마제국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도로와 수로, 각종 건축물과 같은 인프라 덕분이다. 로마도로의 전체의 길이는 약 15km로 지구를 네 바퀴 도는 길이다. 도로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로마의 기동성은 도로의 덕분으로 30만명의 병력으로 로마제국을 유지했다. 콜레세움이나 공중목욕탕을 비롯한 건축물 등 모든 인프라가 시멘트를 활용에서 나왔다. 현대문명 또한 시멘트와 콘크리트 위에 건설되었다. 콘크리트의 경우에는 압축에는 매우 강하지만 인장에는 약하다 그리하여 콘크리트에는 쉽게 금이 간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는 철과 정반대라는 특징이다. 이러한 까닭에 철로 골격을 만든 다음 콘크리트로 덮은 철근 콘크리트가 19세기 중반에 프랑스에서 개발되었다. 알칼리성인 콘크리트로 덮은 철은 녹슬지 않고 오래간다. 고층빌딩이나 긴 다리 등 대형 건축물의 조형물은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인 것이다.

    이산화탄소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칼슘이 반응해서 탄산칼슘을 만든다. 수많은 해양 생물도 이 화학반응을 이용하고 있다 조개와 산호, 일부 플랑크톤 등은 이 반응으로 생성된 탄산칼슘으로 껍데기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다. 이 생물들이 만든 껍데기는 생물은 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점차 바다 밑바닥에 쌓여갔다. 한편 분필가루에 원반이 붙은 원형이나 삼각형, 별모양 구조체 등 복잡하고 불가사의한 모양의 가루가 잔뜩 포함되어 있는데 이 가루들은 모두 백악기(14500만년 6600만년 전)에 증식한 플랑크톤들이 만든 탄산칼슘 껍데기다 백악기의 백악은 원래 석회암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정한 종류의 조개에서 조개껍데기 성분을 분비하는 외투막이란 부분이 우연히 내부로 들어가 만들어진 구슬 모양의 탄산칼슘이 있는데 바로 진주다. 완벽한 원형을 이루며 빛을 반사해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를 사람들은 예부터 최고의 보석으로 여겼다. 지름 5mm쯤 되는 완벽한 원형의 진주는 진주조개 1만개 중 겨우 한 개가 발견될 정도라고 한다. 진주는 고대부터 최고의 보석으로 귀한 대접을 받은 일화가 있다. 안토니아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대접한 호화로운 식사를 두고 클레오파트너는 이것은 진정으로 호화로운 식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클레오파트라는 귀걸이에 달린 큼지막한 진주를 빼 식초 속에 녹여버린다. 이 진주는 1000만 세스테르티우스 현재 금액으로 수백억원이다. 그는 단숨에 식초가 든 잔을 비웠다. 안토니우스는 그의 기지에 매료되었다.

    르네상스시대(14-16세기)를 맞이해서도 진주는 여전히 고급품이었는데 이 진주를 넣고자 야심을 불태운 사람이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항해를 후원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스페인 국왕에게 항해에서 얻은 진주, 보석 금화 향신료 등의 90%를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후원을 얻어 대서양으로 떠났다. 그는 세 번째 항해에서 도달한 베네수엘라에서 진주로 몸을 장식한 원주민들을 발견하게 된다. 원주민들에게 이는 비참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스페인들은 바다에 잠수하는 능력이 없었으므로 원주민들을 폭력으로 위협해 그들이 진주를 채집하게 했다. 또 원주민들은 스페인으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는데 그 값은 진주 두알 분이었다고 한다. 남미에서 유입된 진주로 유럽 왕족과 부유층은 진주로 치장했다. 16세기 이래 왕족의 초상화에 오로지 진주로만 치장한 그림이 유난히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히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진주 사랑은 유별나다. 식품 마가린도 진주처럼 광택이 난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진주의 인기는 식지 않고 그중에서도 프랑스 로젠탈 가문은 세계 각지에 지점을 두고 진주 유통을 독점해 진주의 제왕이 되었다. 로젠탈 가문의 오랜 체제를 끊는 것은 일본의 신기술이었다. 양식 진주 개발이 성공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양식 진주를 수출해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 결론적으로 시멘트부터 진주까지 탄산칼슘은 다채로운 모습을 지닌 재료다. 한편 오늘날 지구 환경이 맞이한 위기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산호초는 작은 동물인 산호가 만들어낸 탄산칼슘이 군체를 이룬 것이다. 바닷물 열대우림이란 이름에 걸맞게 산호초에는 수많은 바다 생물이 산다. 산호초는 지구 표면적의 0.1%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전 세계 170만 종의 생물 중 9만 종이 이곳에 서식한다. 바닷물 온도의 상승, 천적인 가시왕관불가사리의 증식, 대기 속 이산화탄소 증가에 따른 해양의 산성화 등으로 산호초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이미 전 세계의 산호초의 20%가 파괴되었으며 온전한 산호초는 3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산호초가 파괴되면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력이 약해져 지구온난화 속도 또한 빨라지리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꽃밭식물-7) 채송화 / 측백나무 / 코스모스

     

    < 채송화 >

    채송화는 심어 기르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비스듬히 누워서 20쯤 되도록 자란다. 줄기는 붉은빛을 띠는데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서 통통하다. 잎은 어긋나게 붙고 길이 1안팎의 원기둥꼴이다. 잎겨드랑이에는 흰털이 뭉쳐 난다. 꽃은 7월부터 피는데 정오쯤 피었다가 두시간 쯤 지나면 곧 져 버린다. 가장 햇빛이 셀 때만 피어 있는 셈이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때는 꽃이 아예 안핀다. 꽃 색을 붉은색, 흰색, 노란색, 자주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꽃잎 안쪽에는 노란 수술들이 소복이 들어 있다. 벌이나 나비가 날아와서 수술을 건드리면 수술들이 좍 벌어지거나 벌 쪽으로 굽힌다. 꽃가루가 쉽게 묻으라고 그런 것이다 9월쯤 되면 꽃이 진 자리에 뚜껑이 열리듯이 열매의 중간이 가로로 쩍 벌어지면서 씨앗들이 쏟아져 나온다. 채송화는 생명력이 무척 강하다.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고 한두 포기만 심어도 줄기가 뻗어 나가서 꽃밭을 덮어 놓는다. 또 한번만 씨를 뿌려 두면 해마다 싹이 트니까 기르기가 무척 쉽다

     

    < 측백나무 >

    측백나무는 저절로 자라기도 하고 심어 기르기도 하는 바늘잎나무이다. 중국이 원산지라고 짐작을 하지만 우리날에서도 저절로 자라는 곳이 있어서 우리나라 토박이 나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경상도 대구와 영양, 충청도 단양에는 오래된 측백나무 숲이 있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측백나무는 다 자라면 10m가 넘게 자라난다. 나무 전체 모습은 고깔처럼 생겼다. 나무 껍질은 짙은 밤색인데 자라면서 터져서 얇게 벗겨진다. 가지와 잎은 모두 꼿꼿이 선다. 잎은 물고기 비늘처럼 겹겹이 포개져서 붙는다. 잎은 앞뒤가 똑같이 초록색이고 납작한데 만지면 부드럽다. 4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핀다. 꽃이 지고 나면 분을 바른 듯한 초록색 열매가 달리진다. 가을이 오면 열매가 갈색으로 익으면서 벌어지고 작은 씨앗들이 드러난다. 측백나무는 무덤가나 정자, 공원에 많이 심는다. 특히 여러 그루를 촘촘히 심어서 생울타리를 만든다. 가뭄이나 추위, 공해에 잘 견디기 때문에 기르기가 쉽다. 측백나무의 잎과 열매는 피를 멎게 하는 약으로 쓰고, 나무는 관을 짜거나 집을 지을 때 썼다

     

    < 코스모스 >

    코스모스가 물기가 적은 들판이나 길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풀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데 콜럼버스가 유럽에 옮겨 심으면서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백 년쯤 전부터 심어 길렀다. 거름기가 없는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고 포기가 잘 퍼지기 때문에 길가에 많이 심는다. 코스모스는 키가 늘씬하고 가지를 많이 친다. 몸 전체에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잎은 마주나는데 깃꼴로 깊이 갈라져서 실처럼 가늘다. 줄기나 잎에는 털이 없다. 꽃은 보통 가을에 피는데 여름에도 갑자기 기온이 서늘해지면 가을인 줄 알고 핀다. 코스모스는 가지 끝에 한 송이씩 피어난다. 꽃 색깔은 여러 가지이지만 분홍색이나 흰색이 많다. 꽃이 지고 나면 가늘고 길쭉한 씨앗을 맺는다. 심어 기를 때는 대개 4월쯤 씨를 뿌린다. 잎이 대여섯 장 나올 때쯤 옮겨 심으면 잘 자란다. 코스모스는 꽃대에 따라서 꽃 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리 어떤 꽃이 필지 짐작할 수 있다. 꽃대가 갈색을 띤 것은 분홍색 꽃이 피고 녹색인 것은 흰 꽃이 핀다

     

    포경산업 경쟁,

     

    18세기와 19세기에 고래잡이는 미국의 주요 산업으로 발전하여 램프용 기름과 양초용 경뇌유를 제공했다. 아울러 미국의 영토 확장 및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처음엔 낸터킷(매사추세츠주의 한 섬)에서 고래잡이 어부였던 조지프 로치가 고래기름의 성장 잠재력을 간파했다. 자체 양초를 제조함으로써 로치는 기름 업계의 첫 거물이 되었다. 1768년 뉴베드퍼드을 포경, 기름 교역 및 양초 제조 즉 빛의 세계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첫 양초 공장이 문을 열었다. 한편 영국의 포경선 강제 징발이 심해지자 로치 등은 자신들의 배들을 바다로 내보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미국 내 많은 사람들이 뉴잉글랜드 포경업의 큰 잠재력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국민들은 그곳의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기까지 했다. 1789년에 제퍼슨은 국가의 교역에 대한 어려움을 고민하면서 포경업 특히 프랑스 및 영국과의 관계에서 포경업의 역할을 살폈고 그 결과 미국 수출품에서 담배 다음으로 중요한 제품을 고래 기름이라고 생각했다. 1800년대 초반에 포경업의 규모가 달라지면서 다양한 고래 개체군을 찾기 위해 포경 선단에 대서양을 넘어 범위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한편 기름을 얻으려고 고래를 잡게 된 주된 원인은 육지에서 조명 용도로 쓰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양초로, 이후로는 기름 램프에 사용했다.

     

    공장에 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로는 풍력, 수력 및 조수 등이 있었는데 각각의 동력은 한계가 뚜렷했고 사용할 수 있는 장소 또한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초기 산업들은 빠른 속도로 고정된 장소에서만 사용 가능한 바람이나 물이 아니라 목재 숯 석탄 등 이동이나 운송이 가능한 에너지원이었다. 초기 산업 기간 동안 서유럽의 숲은 선박 제조 및 야금을 위한 재료로 쓰이면서 상당 부분 사라졌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