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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기정처럼 조선인은 달리기를 잘한다고 하는데 보장사는 과연 무엇인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1. 11. 29. 04:48

    태상 4년 고구려가 다시 사신을 보내 천리인 열명과 천리마 한필을 바쳤다 <십육국춘수> 408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남연의 군주 모용초에게 두가지 선물을 보냈다. 천리안과 천리마이다. 고구려는 천리를 달리는 마나토너를 중국에 수출한 것이다. 중국 역사책 후한서에 고구려 사람은 걸음걸이가 전부 달리기다라고 했다. 고구려는 마라톤 강국이었다.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달린 전령의 존재가 마라톤의 기원인 것처럼 명령을 전달하고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이다

     

    말을 사람보다 빠르지만 비싸다. 유지비용도 만만찮다. 달리는 말은 고도로 훈련받은 기수가 아니면 못 탄다. 원나라 역참제도가 이식된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500개가 넘는 역참을 설치했지만 조선시대에는 200개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명나라에서 매년 엄청난 수량의 말을 공물로 요구하여 말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결국 사람이 말 대신 뛰어야 했다. 사람은 말보다 빨리 달리지는 못했지만 오래 달릴 수는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산과 강이 많은 지형에서는 사람이 말보다 낫다. 세종실록에 잘 달리는 무사를 변방 고을에 번갈아 배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변방의 급보를 신속히 전하기 위해서다. 병자호란 이후 말이 부족해지자 말 대신 잘 달리는 사람을 역참에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발군
    역참

    국가의 간선 통신망에 해당하는 역참이 이 지경이니 민간의 사정은 뻔하다. 윤부가 강원 감사로 부임하여 고을 사정을 잘 아는 늙은 승려에게 백성의 고초를 물었다. 승려가 제일 먼저 거론한 것은 보장사였다. 보장사는 고을과 고을을 오가며 공문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으레 가난한 아전을 보장사에 임명하는데 춥고 굶주려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폭설이 내리는 궂은 날씨를 만나도 하루만 지체하면 벌을 받는다. 보장사가 지체한 죄를 묻지 말라는 것이 승려의 첫 번째 부탁이었다

     

    읍지인 봉성지 

    19세기에 편찬된 전남 구례군의 읍지 <봉성지>에 이런 기록이 있다. 구례군의 보장사는 백성이 돌아가며 맡았는데 젊은 사람은 괜찮지만 노약자는 직접 갈 수가 없으므로 사람을 사서 보내야 했다. 1년에 서너번은 차례가 돌아오니 재산을 탕진할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수령이 관가의 곡식을 덜어 밑천으로 삼고는 자원자에게 비용을 주고 맡겼다. 힘들고 번거로운 보장사 노릇에서 해방된 백성은 환호했다. 지방 관아에서는 일일이 사람을시켜 공문을 수발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자료다

     

    조선시대 노비

    잘 달리는 노비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 문인 박소는 권신 김안로의 박해를 피해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박소의 친구에게는 하루에 300리를 달릴 수 있는 노비가 있었다. 그 노비는 한양에서 합천까지 9일 거리를 사흘 만에 주파했다. 박소는 이 노비를 통해 조정의 동향을 신속히 전해 듣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연산군 후궁의 오라비 김이고리는 전남 나주에 살았다. 누이 권세를 믿고 인근 고을의 수령들을 종 부리듯 했던 그에게는 잘 달리는 노비가 셋이나 있었다. 나주에서 서울까지 740리 거리를 하루 반나절만에 주파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수령이 있으면 즉각 노비를 서울로 보내 누이에게 일러바쳤다. 김이고리를 거역한 수령은 며칠 못 가 파면당하곤 했다

     

    연행

    조선시대에 가장 먼 길은 중국 가는 길이었다. 한양에서 북경까지 1200킬로미터가 넘는다. 사신단이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는 고작 15킬로미터로 짐수레도 따라가니 이 이상은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사신단의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양반들이 문제이다. 이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에 익숙하지 않다. 말을 타고 가는데도 한번 다녀오면 골병이 든다. 실제로 길에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신단의 수행원들은 이 사행을 평생 사오십 번씩 다녀왔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수행원이 평생 걷는 거리는 모두 합쳐 약 15만 킬로미터다. 사행 한번에 왕복이 6개월이 걸린다고 치면 반평생을 걸어 다니며 보내는 셈이다

     

    담헌 홍대용이 중국 책을 읽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조선의 아이들은 달리기를 좋아한다 담헌은 코웃음을 쳤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그런데 중국에 가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중국 아이들은 장난 좋아하고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편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나라는 겨우 14개국이다. 우리나라가 그중 하나로 당당히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잘 달리기는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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